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외톨이의, 외톨이에 의한, 외톨이를 위한 영화

오랜만에 한국형 수작을 만난 느낌... 

아기자기하고 계속해서 흥미를 느끼게하는 스토리가 오랜만이었다.

원래 글을 퍼오는 성격이 아닌데도, 너무나 정확한 리뷰(내 관점에서..)가 있어 올린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리뷰 by sysche님


김씨표류기 개봉 첫날인 오늘,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남편 출근 시킨 후

떨렁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오전 11시. 2회 상영.

극장 안에는 딱 두 커플이 앉아 있었고

내가 예매한 자리가 하필 한커플의 바로 옆자리라

비어있는 수많은 자리 중 하나 골라 잡기 위해 두리번 거리던 차에

극장 맨 위, 맨 뒤, 맨 가운데에 있는 여자 한명을 발견..

 

이로써 이 극장 안에는

남녀 두 커플과

외톨이 여자 둘(나까지 포함)이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영화 기본정보의 장르 구분도 분명 "드라마"로 되어 있는,

굳이 설명하자면 '유쾌한 터치의 드라마'이다.

 

영화가 끝난 후 두 커플이 "생각보다 별로네" 라며 자리를 뜬 것 역시

발랑 뒤집어질 웃겨 죽겠는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고 왔기 때문이었을 수도.

 

 

섬에 갇힌 남자 김씨와

집안에 갇힌 여자 김씨.

 

남자김씨는 여자의 바깥세상에 있고

여자김씨는 남자의 바깥세상에 있다.

 

이들의 속한 세상과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정반대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두사람에게 그 바깥세상은

두려우면서도

나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 에피소드와 아이템들은

이 두사람의 시선에 따라 각각의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 자체도

일반인과 외톨이가 보는 시선이 다를,

각각의 시선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로

 

영화 자체가 어떤 메시지를 정해놓고 보여준다기 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각각의 면을 달리 볼 수 있는 다면체 같은 느낌이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의 다른 시선, 그러나 닮은 그것]

 

1. window

 

여자 김씨는 컴퓨터 윈도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여자 김씨의 미니홈피는 가상의 그녀다.

다른 사람들의 미니홈피에서 긁어온 사진을 제것인냥 올리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자신의 사진인냥 올려

댓글로 그녀의 존재를 확인 받고 관심을 받는다.

컴퓨터 윈도우는 그녀가 관심을 '받기' 위한 창이었고

가상의 세상과 연결된 창이었지만,

 

그녀 방의 창(window)은 실재하는 세상,

남자 김씨에게 관심을 '주는' 창이었다.

 

늘 관심 받기 위해 컴퓨터 윈도우를 열던 여자 김씨가

관심을 주기 위해 자기 방의 또다른 윈도우를 열게 된 것이다. 

 

섬에 홀로 있던 남자 김씨에게도

저 수많은 건물의 수많은 창들은 그저 무심히 바라보던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저 많은 창문중 어느 한곳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음을 알고

창 너머의 누군가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혼자였던 그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는 끈,

그것이 바로 김씨표류기의 window 이다.

 

 

 

 

 

 

2. 자장면

 

남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삶의 반성'이자 '목표'다.

우연히 발견한 짜파게티 봉지를 보며

그동안 자장면을 홀대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것은

 

지독한 설사에 밑으로는 연신 뿌직이면서도

위로는 사루비아의 달콤함에 눈물 흘리던 첫장면과 다르지 않다.

 

일종의 모순이다.

죽기 위해 찾아온 한강이

그에게 살 자리(밤섬)를 내주었다.

그리고는 굶어죽기 딱 좋게 생긴 이 암담한 무인도에서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즐거움, 달콤함,

하찮게 여겼던 자장면 한그릇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면서

남자 김씨는 자장면의 그 소중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 직접 농사 지을 것을 결심한다.

 

거기엔 짜파게티 봉지에서 발견한 '분말스프'라는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이 '면'만 만들 수 있다면

한낱 "가능성"일 뿐인 이 '분말스프'는 가능성을 넘어선 '성취'가 될 수 있었다.

 

이 가능성에 의한 동기부여는

삶의 목표를 정하고 의욕을 불러 일으킬 뿐 아니라

더러운 똥을 씨앗을 품고 있을지 모를 값진 종자로 보게 하고

거름으로 쓸 좋은 똥을 싸기 위해 건강해지려 노력하는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여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관심'이자 '선물'이었다.

인터넷속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늘 남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만한 사진들을 모으던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관심을 남자 김씨에게 보내는.

 

밤섬으로 보냈다가 반송되어온 불어터진 자장면 덕에

매일 건조한 라면을 부셔 먹던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촉촉한 면을 먹을 수 있었고

희망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남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고

여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으며

동시에 둘 다에게 희망을 주는 무엇이었다.

 

 

 

 

 

 

3. 쓰레기

 

밤섬의 남자 김씨에게 쓰레기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삽자루에 새알 후라이를 해먹고 버려진 오리배를 집 삼는 등

그에게 쓰레기는 살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이 되는 귀한 보물이다.

강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을 모으기 위해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섬 곳곳을 누비며

넘치는 삶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반대로 여자 김씨의 방안 가득한 쓰레기들은

버려야 함에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고 흔적들이다.

빼곡하게 쌓여진 그 쓰레기들이

여자 김씨의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어

삶을 갑갑하게 조여오는 듯 하다.

 

그러나 두사람에게 있어 쓰레기는 그 두사람의

또 하나의 공통점을 확인시켜 준다.

 

살기 위해 쓰레기를 모으는 남자 김씨와

살아있기에 계속해서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여자 김씨.

그렇다. 두 김씨는 모두 "살아있다."

 

 

 

 

 

4.민방위 훈련

 

여자 김씨가 마음껏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두번 있는 민방위 훈련 때이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정지해버리는 세상.

여자 김씨는 행여 자신을 올려다 볼지 모를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활짝 창을 열어 마음껏 세상을 구경하는 '기회'였다.

 

남자 김씨는 목을 매려던 순간

민방위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싸이렌 소리에 잠시 망설인다.

민방위 훈련 끝나고 죽을까..? 라고.

섬에서 끌려나와 이제는 진짜로 죽기 위해

63빌딩을 향하던 버스도 민방위 훈련으로 멈춰선 덕분에

또 한번 목숨을 부지할 여지를 주었다.

 

민방위 훈련 처럼, 남자 김씨를 채근하던

빚쟁이의 압박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면,

이자가 불어 2억이 된 원금 7천만원의 빚이

민방위 훈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잠시 멈추고 기다려 주었다면,

 

너무 빨리, 너무 멀리 가버린 버스를

더이상 쫓지 못하고 멈춰섰던 여자 김씨가

민방위 훈련의 시작과 함께 멈추어 선 세상 속에서

어딘가 정차해 있을 버스를 향해 다시 힘내어 달릴 수 있게 해준 것처럼

 

남자 김씨의 세상도 잠시 멈추어 남자 김씨를 기다려 주었더라면

남자 김씨가 세상에 떠밀려 한강으로 뛰어드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조금만 더 가면 저기에 버스가 서있을 거라고,

그리고 버스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나날이 이자가 늘어가는 그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면,

세상이 조금만 느긋하게 김씨를 기다려주었다면

그는 딱 7천만원 어치만 노력해도 되었을 것을.

그 정도는 해볼만 하다 여기며 힘을 내볼 수도 있었을 것을.

급박한 세상은 그를 채근하며 2억을 떠안겼고

어디엔가 멈추어 서 자신을 기다려줄지 모를 버스를 쫓아갈 의지조차 꺾어 버렸다.

 

여자 김씨에게 '민방위 훈련'은 마음껏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고

남자 김씨에게 '민방위 훈련'은 죽으려는 자신을 번번히 실패하게 만드는 '방해'였다.

그러면서 두 김씨에게 민방위 훈련은,

그들을 밀어내기만 하는 세상을 잠시 멈추어

그들이 뒤쫓아갈 짬을 만들어주는,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여유'는 아니었을까.

 

 

 

 

 

 

5. 옥수수

 

여자 김씨가 아침마다 먹어온 옥수수 통조림은 '죽은 것'이었다.

남자 김씨가 싹 틔운 옥수수는 '살아있는 것'이었고.

 

남자 김씨에 대한 관심 탓에 늘 남자 김씨를 주시하던 여자 김씨는

그 관심의 댓가로 자신의 방에 옥수수라는 "희망"을 옮겨 온다.

 

늘 죽은 옥수수가 가득했던 통조림 캔에 담긴

살아있는 옥수수의 어린 싹들에는

남자 김씨의 희망이 묻어있다.

 

 

 

 

 

 

 

두사람 모두 홀로 남겨진 외톨이들이었다.

남자 김씨가 희망이 "반이나 차있는 물컵"을 보아 왔다면

여자 김씨는 희망이 "반밖에 안차있는 물컵"을 보아 왔다.

 

남자 김씨의 반이나 차있는 물컵을

서서히 옮겨오던 여자 김씨.

관심을 주기만 하던 그녀가

남자 김씨로 부터 관심을 받게 되면서 (who are you)

그녀는 또다시 웅크리고 숨어들게 되고

 

거센 폭풍우에

그간 쌓아혼 희망의 흔적들을

싸그리 날려 버린 남자 김씨는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여자김씨)를 향해 Fuck you를 날린다.

 

자신의 공간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남자 김씨를 향해

여자 김씨는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뛰쳐 나가고

 

"반 밖에 안차있는 희망"으로 바꿔든 남자 김씨에게

여자는 "반이나 차있는 희망"을 내민다.

 

 

사람들의 관심 없이도

혼자서 모든 것을 척척 잘해내는 것만 같았던 남자 김씨가

여자 김씨의 손을 잡게 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우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필요로 했던, 혼자일 수 없을 것 같던 여자 김씨는

반대로 자신이 남자 김씨에게 관심을 보임으로써

 

사람과, 세상과 관계 맺기에 첫발을 내딛은 듯 하다.

 

 

세상은 함께이면서 혼자이고

혼자이면서 또 함께이다.

 

누구나 가끔씩 찾아드는, 혹은 계속 주위에 깔려있는

'외로움'을 만나 가끔, 혹은 계속 외톨이가 된다.

 

이 영화는 외톨이들의 이야기다.

그 외톨이들에 의해 나의 외로움을 끄집어보게 되는 영화이다.

결국엔 모든 외톨이들을 위한

일종의 공감대를 만들고 자기 위안, 서로를 위로하게 되는 영화다.

 

 

늘 컴퓨터 윈도우를 통해 영화를 보던 나 역시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에 쫓겨 짜증이 날 때,

해도 안될 것 같아 무기력해지기만 할 때,

바람이나 쐬고 싶어 나가고 싶어도

남들 시선 신경 쓰여 옷장을 뒤적이고 화장품을 꺼내들다

이내 귀찮아져 그냥 집안에 눌러 앉고야 말 때..

 

내게도 민방위 훈련 싸이렌이 울렸으면 좋겠다.

여유롭게 세상을 구경하고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모든 세상이 멈춘 채 나를 기다려주는 그런 거 말이다.